조선시대의 여성교육 레포트
조선시대의 여성교육
조선시대의 여성교육이 부족했다는 점에 대해 작성한 리포트입니다. 조선시대의여성교육
혜경궁 홍씨는 삼간택에 뽑히는 즉시, 별궁으로 들어가서, 50영리 동안, 비빈으로서의 예비교육을 받았는데, 소학부터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 `글공부`는 어떻게 되는가, 앞에서 말한 것도 그 뜻이지만, 이 경우 `글`이란 한시, 한문고전을 말한다. 한글은 글이 아니라, 언문이라 낮춰 쓴다. 글을 가르치는 것은 까막눈이나 면하고, 문안 편지나 쓸 줄 알게 하는 목적이다. 이것은 조선조시대 아주 특출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양반계급의 여성교육이었던 것이다.
`소학을 보낼 것이니, 아비에게 배우라`(한중만록)
시아버지인 영조는 그렇게 말했지만, 한 달하고도 20일이 넘는 기간동안, 세자빈 후보의 글공부를 맡은 사람은 친정 부숙과 남형제들이었다. 한편, `훈서`도 병행하여 배웠다고 하는데 이것은 규훈류로 어제라고 했으니, 영조가 군중전래의 「내훈」을 기초로 다시 엮은 것이다. 「한중록」의 유창한 문장력과 어려운 한자의 구사는 작가의 넉넉한 학식과 교양을 엿보게 한다. 그가 글 가운데 인용한 중국역대 후비의 고사라든가, 우리나라 국조사기의 이야기는 혜경궁의 글공부가 다음해(열살) 입궁한 후에도 계속되어 경서, 사기까지도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이런 높은 신분의 여인도 7,8세때 한글공부가 전부였다는 건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공주의 육대손에 할아버지가 판서이었던 집 딸이 이 정도라면 일반 여성들은 어떤 상태였을까? 귀족을 포함하여, 소위 일반 양반 여성들이 고작 한글 정도 깨우쳤고, 그 아래 서민들은 정말로 앞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여성의 교육기회는 남성과 거의 동등해졌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급격히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가부장제인 우리 사회는 어려서부터 남자아이에게는 공격성을 진정한 남성다움으로 가르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순종적이고 자기 주장을 펴지 못하는 착한 여자로 가르친다. 남성은 힘과 용기를 덕목으로 하여 출세를 최고의 목표로 삼고 사회적인 일을 함으로써 생계 부양자가 되는 반면 여성은 사회적 능력보다는 아름다운 외모와 순종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 결혼이 인생의 목표이며 가정일에 우선 순위를 둠으로써 남성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존재가 된다.
[문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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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종류 : HWP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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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름 : 조선시대의 여성교육.hwp
키워드 : 조선시대의,여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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